» 강지환의 하이톤 목소리와 소지섭의 중저음이 좋은 앙상블을 이루는 영화 <영화는 영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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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다양한 만큼 목소리 더 중요한 남우들흔히 말한다. 남자가 시각에 민감하다면, 여성은 청각에 예민하다. 물론 여배우에게도 목소리는 중요하지만, 남자배우에게 목소리는 더욱 중요하다. 가끔 ‘튀는’ 여배우의 목소리는 독특한 캐릭터가 되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남자배우의 목소리가 장점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남자배우에겐 ‘평균적으로 좋은’ 목소리가 요구된다. 드라마 <경성 스캔들>을 연출한 한준서 한국방송 PD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아무래도 무게감 있는 게 많아서 통념상 괜찮은 목소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물론 성별로 불평등한 캐릭터의 문제도 있다. 방송전문 웹진 <텐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은 “여전히 여배우에 견줘 남자배우 캐릭터가 더 다양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다. 그래서 남자배우의 목소리 운용 폭이 넓을 수밖에 없고, 목소리의 중요성도 더해진다”고 덧붙였다. 김명민, 이범수, 박신양, 배용준, 유지태, 강동원, 박해일, 신하균, 현빈, 그리고 이병헌…. 목소리로 팬들을 녹이는 배우들의 목록이다.
여기에 새삼 지진희가 더해진다. 지진희는 요즘 한국방송 월·화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혼자 놀기 좋아하는 깐깐한 노총각 조재희를 연기하면서 더욱 매력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대장금>의 ‘종사관 나리’로 기억되는 지진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괜찮은 발성을 지닌 배우였다. 그러나 너무나 반듯한 이미지란 인식이 박혀 배우로선 매력의 결정적 한 끗이 부족해 보였다.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지진희는 조금은 퉁명스럽게, 약간은 단호하게 툭툭 던지는 말투를 구사한다. 이런 말투는 모범생 같았던 배우의 이미지에 매력을 더했다. 조금도 흐트러진 것을 참지 못하는 결벽증에 타인의 고충에 무심한 노총각 조재희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드는 힘의 절반은 지진희의 목소리 연기에서 나온다. 여기에 시청자의 귓가에 은근히 스미는 정확한 발음까지 더해져 드라마를 보면서 낄낄대는 여유까지 선사한다. 백은하 편집장은 “한석규의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해도 ‘허허허 ’ 하면서 들어줄 것같이 편안하다면, 지진희의 목소리는 믿음을 주면서도 뭔가 자신의 주장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목소리 핸디캡을 장점으로 활용한 송강호
이렇게 좋은 목소리에 말투의 강약이 더해지면 정감이 생긴다. 이선균은 흔히 ‘목욕탕 소리’로 불리는, 울림이 깊은 목소리를 지녔다. 그의 무게감 넘치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대표적인 좋은 음성으로 꼽히지만, 한편에선 높낮이가 부족하고 너무 묵직해 ‘느끼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도 최근에 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트리플>에서 목소리 연기의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 맡았던 배역보다 쾌활한 캐릭터인 조혜윤 역을 맡아 때로는 징징거리고 때로는 까불면서, 한없이 낮게만 깔리던 목소리에 리듬이 생겼다. 백은하 편집장은 “배우 경력이 쌓이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턴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게 부담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자연스런 자기의 말투가 나온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음색은 고정된 변수가 아니다. 타고난 소리가 어떤 말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로 들린다. 호흡과 발성에 달린 것이다. 음색이 비교적 선천적이라면 말투는 후천적이다. 그래서 선천적인 것처럼 보이는 목소리는 개발의 여지가 상당하다. 그래서 발음을 교정하고 발성을 연습해 좋은 목소리로 거듭나는 배우들이 적잖다. 한준서 PD는 “원래 목소리도 좋지만 갈수록 발성이 좋아지는 배우”로 소지섭을 꼽았다. 발음과 발성이 오랫동안 나쁜 상태로 머무는 경우는 때로 게으른 배우로 인식된다. 그리고 목소리 연기가 좋아지면 다른 연기에도 안정감이 생겨 연기 전체가 좋아지는 선순환도 생긴다.
| » 남자배우에게 목소리는 외모를 능가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다. 드라마 <트리플>의 이선균(왼쪽 사진 맨 오른쪽)과 <결혼 못하는 남자>(오른쪽)의 지진희는 좋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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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핸디캡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든 경우도 있다. 송강호는 남자배우로서 장점으로 꼽기는 어려운, 약간 높은 음색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목소리의 활용을 통해 매력을 만든다. 오히려 하이톤의 목소리는 송강호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컨대 영화 <박쥐>에서 송강호는 진지한 상황에 엉뚱한 얘기를 해서 웃음을 주는데, 그것은 송강호의 독특한 목소리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보통은 약점으로 여겨지는 사투리도 송강호 목소리의 독특한 인장이 되었다. 이런 독특한 음색과 말투가 없었다면 오히려 다양한 캐릭터 변신이 어려웠을 것이다. 황정민도 평범한 목소리지만, 캐릭터에 맞춰 목소리를 바꾸는 데 능숙하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착한 남자로 나올 때의 어수룩한 목소리와 <달콤한 인생>에서 나쁜 남자를 연기할 때의 야비한 목소리는 매우 다르다.
좋은 목소리에 소리를 다루는 기술까지 더해지는 경우는 금상첨화다. 목소리 연기의 달인 김명민은 <하얀 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상당히 다른 목소리를 선보였다. 심지어 그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청년 이순신부터 노년 이순신까지 나이에 따라 다르게 변하는 목소리를 들려줬다. 김명민은 다큐멘터리에서 “지금도 매일 아침 발음과 발성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이병헌도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닌 배우다. 그는 남성적인 목소리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주하면서 매력을 만든다. 특히 깡패 같은 인물을 연기할 때에 그는 말끝을 흐려서 느낌을 살린다. 백은하 편집장은 “타고난 목소리는 정석인데 말투는 허술하게 써서 빈틈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에 보호 본능이 자극된다.
목소리엔 그 사람의 역사와 성격이 스며 있어
연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목소리의 앙상블도 중요하다. 한준서 PD는 “영화 <영화는 영화다>에서 강지환의 하이톤 목소리와 소지섭의 중저음이 좋은 앙상블을 이루는 것을 들으면서 새삼 목소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상대 배우와의 목소리 궁합도 중요하다. 불균형의 균형도 있다. 이준기는 전형적인 꽃미남 외모에 뜻밖의 중저음 목소리를 지녔다. 이렇게 목소리의 의외성이 주는 매력도 있다.
목소리만 좋았어도 더욱 성공했을 배우들도 있다. 권상우는 지금도 여전히 발음 문제가 지적된다. 차인표도 목소리가 두꺼웠으면 더욱 연기의 폭이 넓어지고 팬층도 두터웠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원로배우 신성일이 21세기의 배우라면 과연 대배우가 되었을까 궁금한 이들이 적잖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처럼 목소리를 듣기 전에 더욱 매력적인 유명인도 적잖다.
서동일 발성치료클리닉 원장은 “배우에게 몸을 만드는 헬스만큼 발음과 발성을 단련하는 목소리 헬스도 중요하다”며 “아직 목소리 공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배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배우 차승원은 장군감 같은 바리톤 목소리를 가졌는데 코미디 연기를 하면서 나쁜 습관이 붙어 드라마 <시티홀> 촬영 전에 잠깐 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렇게 끝없이 노력하는 배우도 있다. 흔히 목소리엔 그 사람의 역사와 성격이 스며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목소리가 좋은 배우가 좋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